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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요재공>무공랑예문관봉교겸춘추관기사관공묘갈명병서(務功郎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公墓碣銘並序)
<요재공후>무공랑예문관봉교겸춘추관기사관공묘갈명병서(務功郎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公墓碣銘並序) 公早釋褐介貞不事權貴知舊勸公屈己以通仕路公曰以我爲張師德而不爲劉安世耶嗚呼奔競興而廉恥喪浸浸至今日而國不爲國人不爲人吾欲表出茲一語以勵渝俗公生正德甲辰少有才思凡書過眠不忘丁卯中司馬兩試丙子文科選奉敎敎授公癠血指得廷數時遭喪口不絶哭泣身不脫絰帶後喪亦知之服闋節意仕進山水之區築一小亭顔曰毛老盖其早進榮塗雅意所不存而曩時之善爲親屈也永失退老以毛義爲先獲云爾志尙雅實芬華所不屑自娛以圖書訓子以誠正晦養募黙無赫赫之名而不失中正之義以四十五成子終嗚呼短矣葬安谷負甲原夫人合封公諱九齡字子壽趙氏系玉川高麗檢校諱璋爲上祖傳至諱元吉麗季與圃冶同義封玉川府院君是爲公五世諱瑛尙書有罔僕義諱龜山司正諱士淳郡守諱俊孫敎授公以上四世也公娶海州吳氏擧一男堅義孫胤朝公以超夷之才得試其用則著於事業當菀有可觀而約以終世所收言行又寂蓼如此可慨也巳後孫榮鎭將改竪石以舊刻有未安命其子悅淳俾字萬銘銘曰一擧得第爲親而屈屈己要路公則不屑足以警世是以表出雪山之東有崇四尺寔公攸藏過者之式 幸州 奇宇萬 撰 무공랑예문관봉교겸춘추관기사관공묘갈명병서(務功郎藝文館奉敎兼春秋館記事官公墓碣銘並序) 공이 처음 出仕(출사)하여 지절이 고결하여(志節高潔)권귀(權貴)를 멀리함으로 동요가 공에게 권문에 아첨하여 벼슬길을 열어라고 권고하니 공의 말씀이 나는 장사덕(張師德)이 되고 유안세(劉安世)는 되지 말라는 것인가 하였다. 슬프다. 염치없이 관록을 탐한 자가 다투어 일어나 지금에 나라가 나라꼴이 아니요 사람이 사람 구실을 못함으로 내가 이 한말을 발표하여서 이 더러운 풍속을 깨우고저 하노라. 공이 성종무신(成宗戊申)一四八八年에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어 글을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중종정묘(中宗丁卯)一五○七年에 사마양시에 올라 중종병자(中宗丙子)一五一六年에 문과에 급제하고 봉교에 발탁되었다. 교수 공병환에 손가락 피를 드려 여러날 연명하였고 상사 때에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고 상복과 질대(絰帶)를 벗지 아니하며 다음 상사에도 같이 하였다. 탈상 후에 벼슬을 싫어하고 산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모로(毛老)라 칭호하셨다. 대개 일찍 관계에 나간 것은 본뜻이 아니요 어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한때 몸을 굽힌 것이었다. 영구히 퇴로(退老)하여서 모의(毛義)와 같이 어버이를 위하여 관명(官命)을 받든 것을 증거하였다. 공이 지절이 고상하고 단아하여 화려한 것을 경시(輕視)하고 학문을 좋아하여 성의 정심으로서 자손을 훈도하고 묵묵히 자양하니 혁혁한 명성은 없으나 중정(中正)의 의리는 잃지 아니하였다. 四十五歲로 중종무자(中宗戊子)一五二○年에 별세하니 수단(壽短)한 것이 슬프다. 안곡부 甲원에 안장하고 부인도 합봉하였다. 공의 휘는 구령(九齡)이요 자는 자수(子壽)이며 옥천조씨인데 고려검교대장군 휘 장을 상조로 휘 원길(元吉)에 이르러 려말에 포야(圃冶)로 더불어 덕의를 같이 하여 옥천부원군의 봉작을 받았으니 이 어른이 공의 五세조요 휘 영(瑛)은 상서(尙書)로 불사 二군의 절의가 있었고 휘 구산(龜山)은 사정이요 휘 사순(士淳)은 군수이며 휘 준손(俊孫)은 교수인데 공이 이상 四세였다. 공이 부인 해주오씨(海州吳氏)와 사이에 一男 견의(堅義)와 손자 윤조(胤祖)가 있었다. 공이 탁월한 재행으로 그 포부를 발양하였으면 웅위(雄偉)한 사업이 가히 볼 것이 있을 것인데 이름은 숨기고 별세하였고 수집한 언행이 또한 적막하니 가히 개탄할 일이로다. 후손 영진(榮鎭)이 비석을 개수하면서 먼저 새긴 글자가 희미하여 편안치 아니하므로 그 아들 이순(怡淳)을 보내 우만(宇萬)에게 청문함으로 새겨갈오되. 一擧得第爲親而屈 한번 나가 급제한 것은 어버이 봉양을 위함이로다. 屈己要路公則不屑 몸을 요로에 굽혔으나 공은 곧 가볍게 보았네. 足以警世是以表出 족히써 세속을 깨워 이로서 빛이 밝았네. 雪山之東有崇四尺 설산의 동쪽에 높은 四척비가 있도다. 寔公攸藏過者之式 이것은 공의 가성이니 지내는 자 이에 구부릴지어다. 행주(幸州) 기우만(奇宇萬)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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